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맹시 전쟁 (문단 편집) == 전쟁의 시작 == 그렇게 쌓이던 불만은 한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폭발하고야 말았다. 그라쿠스 형제에 이어 동맹시 시민들에게의 로마 시민권 부여를 주장하던 민중파 호민관 [[소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]][* 소 [[카토]]의 외삼촌이기도 하다.]는 당대 최고의 영웅 [[가이우스 마리우스|마리우스]][* [[누미디아]]의 유구르타를 평정하고, [[킴브리 전쟁]]에서 게르만족의 침입을 저지하여 집정관을 6번이나 지낸 거물이었다. [[레기온|로마 군단]]의 군제 개혁으로 유명한 인물이며, [[율리우스 카이사르]]의 고모부이기도 하다.]와 원로원의 1인자 [[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스카우루스]][* 기원전 115년도 집정관으로 원로원 내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원로원의 수장이었다.]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.[* 드루수스는 보수파에 속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스카우루스같은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도 신뢰를 얻고 있었다. 특히 그라쿠스 형제의 전례를 참고하여 모든 절차를 합법적으로 진행하려고 노력했다.] 집정관 [[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(기원전 91년 집정관)|루키우스 마르키우스 필리푸스]]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풀리는 듯 했으나 드루수스는 [[원로원]]에 의해 살해당했다.[* 필리푸스나 법무관 [[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(기원전 91년 법무관)|퀸투스 세르빌리우스 카이피오]]가 배후로 많이 의심되는데 키케로는 히스파니아의 수크로 출신인 바리우스 세베루스를 배후로 지목했다. 참고로 원로원 의원 중 상당수가 드루수스를 지지했고, 그랬기에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라쿠스 때와 달리 암살을 단행한 것이다. 심지어 평생을 정적으로 산 스카우루스와 마리우스가 이 문제에 한해서는 같이 힘을 합쳐 드루수스를 지지했다.][* 드루수스의 유언은 '''누가 나처럼 우리 공화국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?'''(Ecquandone similem mei civem habebit res publica)였다.] 결국 완전히 폭발해버린 동맹시들은 로마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자체적으로 '''이탈리아 공화국'''을 결성, 정부와 수도를 정하고 군대를 양성하기 시작했다. 물론 로마도 두 눈 뻔히 뜨고 당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. 바야흐로 전쟁의 서막이 울리고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